F1 Insights

By Conradmaker

모나코 GP, 체스판이 된 서킷
모나코 GP, 체스판이 된 서킷

2025 모나코 그랑프리: 체스판이 되어버린 서킷

노리스가 17년 만에 맥라렌 모나코 우승을 안겼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포디움 밖에서 벌어졌다. 윌리엄스와 레이싱 불스가 만들어낸 기묘한 전략 싸움. 이건 레이싱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5월 25일, 모나코의 지중해 햇살 아래서 78랩 동안 벌어진 일은 F1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노리스가 1위로 체커 플래그를 받았고, 르클레르와 피아스트리가 뒤를 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모나코 레이스 같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달랐다. FIA가 야심 차게 도입한 '2스톱 의무화' 규정이 예상치 못한 괴물을 만들어냈다. 속도의 경쟁이 아닌, 고도의 심리전과 팀워크가 빚어낸 느린 체스게임. 그 결과는 아름답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왜 이런 규정이 나왔나

2024년 모나코의 악몽을 기억하는가. 레이스 시작과 동시에 레드 플래그. 모든 드라이버가 공짜 피트 스톱 기회를 얻었다. 그 뒤로는? 극단적인 타이어 관리 주행. F1 역사상 가장 지루한 레이스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FIA는 이걸 바꾸겠다고 나섰다. 2025년 모나코에 한해 모든 드라이버가 최소 2번의 피트 스톱을 의무화. 목표는 단순했다. 가장 화려하지만 종종 가장 단조로운 레이스에 전략적 변수를 불어넣자는 것.

결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건 규정을 만들 때 FIA가 예상한 게 아니었다.


윌리엄스의 완벽한 수읽기

이번 레이스의 진짜 주인공은 윌리엄스였다. 알본 10위, 사인츠 11위로 예선을 마친 윌리엄스는 더블 포인트를 노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먼저 레이싱 불스가 판을 깔았다. 로슨이 의도적으로 페이스를 늦추기 시작했다. 팀 동료 하자르에게 22초 이상의 간격을 만들어주려는 계산된 플레이. 윌리엄스는 이걸 보고 있었다.

1단계: 사인츠의 희생 (24-31랩)

"페이스를 관리해라." 사인츠에게 내려진 지시는 냉정했다. 11위로 달리던 그는 앞서가는 알본과의 간격을 벌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알본이 두 번의 피트 스톱을 하고도 사인츠 앞으로 복귀할 수 있는 약 23초의 간격.

뒤에서는 러셀이 거세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사인츠는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움직이는 시케인'처럼 완벽하게 페이스를 조절했다. 팀을 위한 완벽한 희생이었다.

2단계: 알본의 '공짜' 피트 스톱 (32랩 & 40랩)

사인츠가 만들어준 안전한 시간적 공간. 알본은 32랩과 40랩, 두 번의 의무 피트 스톱을 모두 마쳤다. 9위 자리를 완벽하게 확보한 것이다. 추월이 불가능한 모나코에서, 윌리엄스는 속도가 아닌 시간 조작을 통해 사실상 '공짜' 피트 스톱을 두 번이나 성공시켰다.

3단계: 은혜 갚기 (41-53랩)

이제 역할이 바뀌었다. 알본이 이번에는 사인츠를 위해 페이스를 늦추기 시작했다. 묵묵히 팀을 위해 희생했던 사인츠가 보상받을 차례. 알본이 만든 간격 덕분에 사인츠는 48랩과 53랩에 두 번의 피트 스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10위로 복귀하며 윌리엄스에게 귀중한 더블 포인트를 안겼다.

드라이버예선첫 스톱두 번째 스톱최종 순위포인트
알본10위32랩40랩9위2점
사인츠11위48랩53랩10위1점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씁쓸했다.

알본은 말했다. "오늘 경기는 저나 카를로스나 원했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결국 전술적인 게임이었고 우리는 해내야만 했습니다."

사인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와 다른 팀들이 페이스를 늦춰 간격을 만드는 방식은 모나코 그랑프리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이것이 스포츠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느꼈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이게 2025년 모나코의 현실이었다.


과거의 거인들이 남긴 유산

윌리엄스의 '슬로우 플레이'는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F1 전략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피트 월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지적 투쟁들의 후예다.

브라밤의 재급유 도박 (1982-1983)

고든 머레이가 모든 걸 바꿨다. 1980년대 초, 그는 의도적으로 작은 연료 탱크를 장착한 머신을 설계했다. 레이스 초반 가벼운 차체로 빠르게 치고 나간 뒤, 중반에 멈춰 연료를 보충하는 '재급유' 전략. F1의 패러다임을 바꾼 공격적인 도박이었다.

슈마허와 브론의 합작품

미하엘 슈마허와 로스 브론. 이 콤비는 전략을 승리를 쟁취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했다.

1998년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브론은 과감한 3스톱 전략을 선택했다. 추월이 불가능한 헝가로링에서 연료가 적어 가벼워진 차로 퀄리파잉 랩에 가까운 질주를 펼치는 것. 슈마허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완수하며 역사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2004년 프랑스에서는 더 과격했다. 알론소의 르노를 극복하기 위해 페라리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4스톱 전략을 지시했다. 짧은 스틴트를 여러 번 반복하며 가벼운 차의 이점을 극대화. 결국 알론소를 추월하지 않고도 레이스에서 승리했다.

알론소의 아부다비 비극 (2010)

전략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2010년 시즌 마지막 레이스, 챔피언십 선두였던 알론소는 웨버를 견제하기 위해 섣불리 피트 스톱을 감행했다. 하지만 다른 차들의 존재를 간과한 치명적인 실수였다. 결국 알론소는 다른 차 뒤에 갇혀 챔피언 타이틀을 내주어야 했다.

슈마허의 전략이 '공격 무기'였다면, 2025년 윌리엄스의 슬로우 플레이는 '방어막'이었다. 시대가 바뀌었고, 전략의 목적도 달라졌다.


실패한 성공

솔직히 말하면, 2025년 모나코의 2스톱 의무화 실험은 애매하다. 성공일까, 실패일까?

한편으로는 성공했다. 2024년의 극단적인 타이어 아끼기 주행은 없어졌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흥미진진한 레이싱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대신 팀들이 제시된 퍼즐을 논리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인 '슬로우 플레이'라는, 더 냉소적인 형태의 모습을 낳았다.

규정과 팀 사이의 끊임없는 '고양이와 쥐' 게임. 이번에는 쥐가 이겼다. 공은 다시 FIA에게 넘어갔다.

내가 보기에는 문제의 근본은 모나코 자체에 있다. 현대 F1 머신은 모나코의 좁은 도로에서 경쟁하기에는 너무 크다. 트랙의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는 한, 어떤 규정도 진정한 휠-투-휠 레이싱을 강제할 수 없다는 '모나코 패러독스'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2025 모나코 그랑프리는 노리스의 눈부신 우승뿐만 아니라, F1 전략의 역사에 길이 남을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이다. 이 레이스는 F1에서 피트 월에서 벌어지는 두뇌 싸움이 트랙 위에서의 속도 경쟁만큼이나 치열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과연 FIA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